설빙 배달매장 – 디저트 브랜드의 유통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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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프렌차이즈

설빙 배달매장 – 디저트 브랜드의 유통 한계

‘설빙’은 2010년대 중반 국내 디저트 시장에 코리안 디저트라는 새 바람을 불러온 대표 브랜드로, 단순한 빙수 이상의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며 빠르게 전국에 가맹점을 확산시켰다. 단호박설빙, 인절미설빙, 망고치즈설빙 등 비주얼과 맛 모두를 만족시키는 제품을 통해 MZ세대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했고, SNS를 통한 자발적 홍보 효과까지 누리며 브랜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중심의 구조가 위기를 맞으면서, 설빙은 ‘배달매장 전환’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시도하게 된다.

설빙 배달매장의 한계

배달 플랫폼과 연계해 다양한 메뉴를 택배 또는 배달로 제공하며 매출 회복을 노렸지만, 결과적으로 이 시도는 설빙의 브랜드 이미지 훼손과 소비자 만족도 저하로 이어졌고, 디저트 프랜차이즈의 유통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대표 사례가 되었다. 이 글에서는 설빙 배달매장의 실패 원인을 브랜드 경험, 제품 물성, 소비자 심리, 운영 구조 측면에서 다각도로 분석해보려 한다.

 

설빙의 성공 요인 – 오프라인 경험에 집중된 브랜드

설빙의 성공은 단순히 빙수를 잘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 브랜드는 디저트를 하나의 ‘경험’으로 확장한 대표적인 국내 사례였다. 눈처럼 부드러운 우유얼음 위에 국산 콩가루와 인절미를 얹은 인절미설빙, 두툼한 망고 조각과 치즈케이크가 올라간 망고설빙 등은 비주얼, 식감, 양 모두에서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설빙은 매장을 단순한 디저트 판매 공간이 아니라 휴식 공간, 데이트 공간, SNS 인증 장소로 포지셔닝했다. 매장마다 통일된 인테리어, 넓은 좌석 간격, 조명이 강조된 디저트 연출 등은 소비자가 매장에서 디저트를 즐기는 그 자체를 하나의 체험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또한 계절 한정 메뉴, 지역 한정 설빙, 콜라보 제품 출시 등 콘텐츠 중심의 마케팅 전략도 설빙의 빠른 성장에 기여했다. ‘설빙은 친구와 함께 먹는 특별한 디저트’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형성되며, 브랜드는 단일 품목 중심이 아닌 ‘브랜드 경험’ 중심으로 소비자에게 각인됐다.

하지만 이 모든 성공 요인은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구축된 것이었고, 본질적으로 설빙은 ‘현장에서 먹어야 가장 맛있는 음식’을 판매하는 브랜드였다. 이는 배달 전환 과정에서 가장 큰 약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배달 구조의 문제 – 제품의 본질과 유통 방식의 충돌

설빙의 제품은 대부분 얼음과 과일, 떡, 소스 등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즉석에서 먹을 때 가장 이상적인 식감을 제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배달은 이 모든 조건을 무너뜨리는 유통 방식이다. 아무리 빠른 배달이라 하더라도, 얼음이 녹고 과일이 무르며 떡은 딱딱해지기 쉬운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설빙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달 전용 메뉴’, ‘반얼음 포장’, ‘소스 분리형 패키지’ 등을 시도했지만, 본질적 한계는 극복하지 못했다. 제품을 받는 소비자는 기대한 비주얼과 식감을 경험하지 못했고, 오히려 “이럴 거면 아이스크림을 먹지”라는 실망감이 누적되었다.

특히 배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 기대치와 실제 제품 경험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인데, 설빙은 브랜드 파워로 인해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배달 후 소비자의 실망도 컸다. 또한 포장 용기의 디자인이나 위생 측면에서 타 배달 디저트 전문 브랜드보다 퀄리티가 낮다는 평가도 있었고, 이 역시 브랜드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설빙은 배달 매출을 확보하려 했지만, 소비자 경험 측면에서는 ‘비추천 브랜드’로 자리잡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브랜드 충성도 약화와 신규 고객 유입 저조로 이어지게 되었다.

 

브랜드 경험의 상실 – 공간 없는 디저트는 설빙이 아니었다

설빙이 가장 강력했던 무기는 ‘매장에서 먹는 설빙’이라는 감성적 소비 경험이었다. 친구와 함께 시키는 설빙 2개,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색감 좋은 플레이팅, 음료와 함께 나누는 시간. 이 모든 것이 ‘설빙을 먹는다’는 행동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였다.

하지만 배달은 이 경험을 모두 제거해버렸다. 소비자는 배달된 설빙을 혼자 먹으며, 브랜드와의 감정적 연결을 느끼지 못했다. 더군다나 설빙이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감은 매우 높았기 때문에,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얼어붙은 떡과 물같은 소스’는 실망감 그 자체였다.

게다가 1인용 디저트 소비는 다른 프랜차이즈가 훨씬 강세였다. 배스킨라빈스, 밀탑, 배달 전문 젤라또 브랜드들은 소형 패키지, 냉매 활용, 고급 패키징 등으로 1인 소비에 최적화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설빙은 이런 구조에 적응하지 못한 채, 기존 대용량 중심 구성을 그대로 유지하며 브랜드 경험의 실체를 잃었다.

결국 소비자는 "설빙은 배달로 먹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브랜드는 매장 방문 없이 소비자가 긍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기존 팬층의 이탈을 막지 못하게 되었다.

 

설빙 사례가 남긴 교훈 – 유통 채널 확장은 브랜드 경험의 재설계가 전제다

설빙 배달매장의 실패는 단순히 ‘빙수는 배달이 어렵다’는 물리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브랜드가 자신이 제공하고 있던 핵심 경험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채널 확장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모든 브랜드는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맞춰 유통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그 변화는 단순히 판매 방식의 전환이 아니라,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경험의 재구성이어야 한다. 설빙은 ‘경험 기반 디저트 브랜드’였고, 그 정체성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스토리텔링, 포장 기술, 감성 재현이 필요했다.

하지만 설빙은 배달을 ‘채널’로만 이해했고, 소비자는 ‘설빙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 결과, 채널은 확장됐지만 브랜드는 오히려 줄어들었고, 오프라인 매장 방문자마저 줄어드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이 사례는 프랜차이즈뿐만 아니라 모든 브랜드에게 묻는다.
“당신은 소비자에게 어떤 경험을 팔고 있으며, 그 경험을 새로운 채널에서도 유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유통은 방식일 뿐이다. 핵심은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