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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락한 프렌차이즈

반궁 – 고급 한정식 브랜드가 대중성에서 멀어진 이유

‘반궁’은 고급 한식의 가치를 전통과 정갈함으로 풀어낸 프리미엄 한정식 프랜차이즈로 출발했다. 정식 코스 구성, 품격 있는 플레이팅, 전통 궁중요리를 현대화한 메뉴 구성으로 중장년층과 접대 수요를 중심으로 주목받았고, 고급 한식 외식의 대중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격식과 맛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와 함께 백화점, 특급 호텔 내 입점도 이루어졌고, 일시적으로는 브랜드의 위상이 높아졌다.

 

반궁이 대중성에서 멀어진 이유

 

그러나 반궁은 대중성과 확장성 확보에 실패하면서 점차 외식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 이유는 단순히 ‘고급이라 비쌌기 때문’이 아니라, 시장 흐름과 맞지 않는 포지셔닝, 콘텐츠 리뉴얼 부재, 수익 구조의 비효율성, 타깃층과의 거리감 때문이었다.

 

전통과 품격을 내세운 프리미엄 한정식 – 성공적인 시작

반궁은 ‘반가(班家)의 음식’과 ‘궁중 요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고급 한정식 브랜드였다. 메뉴는 보쌈, 구절판, 전류, 잡채, 제철 나물, 탕, 밥, 후식까지 정갈하게 구성되었고, 1인 2만 원대부터 시작되는 정식 코스는 고급스럽지만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가격대로 포지셔닝되었다.

매장 인테리어는 전통적인 한옥 스타일을 모던하게 풀었고, 고급 식기류와 정제된 서비스는 타 외식 브랜드와 차별화되기에 충분했다. 이로 인해 반궁은 중장년층 가족 모임, 기업 회식, VIP 접대용 외식 브랜드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특히 고급 한정식이 다소 낯설고 멀게 느껴졌던 소비자들에게 ‘한 번쯤 가볼 만한 프랜차이즈 한식당’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기존의 뷔페형 한식이나 대중 백반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강화했다. 백화점 식당가나 특급호텔 푸드존 내 입점을 통해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공고히 하며 초기에는 확실한 차별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은 특정 수요층에 국한된 것이었고, 빠르게 변화하는 외식 소비 트렌드와는 맞물리지 못한 채 한정된 포지셔닝에 갇히게 된다.

 

대중성과의 거리 – 고급스러움이 독이 되다

반궁의 가장 큰 한계는 지나치게 고급화된 이미지가 대중 소비와의 간극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중장년층에게는 인지도가 있었지만, 2030세대 소비자에게는 ‘접대용 식당’, ‘부모님 모시고 가는 곳’으로 인식되어 자발적 방문 동기를 만들지 못했다.

특히 가격 대비 만족도 측면에서도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플레이팅이나 분위기는 고급스럽지만, 실제 음식 구성은 소규모 한식당에서 접할 수 있는 수준의 메뉴를 고급 포장에 담은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소비자는 “맛은 무난하지만 가격은 고급 레스토랑 수준”이라고 평가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재방문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또한 브랜드는 음식 외의 브랜딩 요소나 콘텐츠 마케팅에 취약했다. SNS 시대에 맞는 비주얼 콘텐츠, 바이럴 메뉴, 감성 포인트가 부족했고, 리뷰 마케팅이나 디지털 채널에서의 존재감도 약했다. 고급 외식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을 느낄 수 있는 감성적 설계나 고객 경험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결국 반궁은 고급화에 성공했지만, 대중성과 유연성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확장성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리뉴얼 없는 메뉴와 비효율적인 수익 구조

프랜차이즈 외식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기적인 메뉴 리뉴얼과 효율적인 운영 구조가 필수다. 그러나 반궁은 수년간 정식 구성과 플레이팅 방식이 거의 동일했으며, 시즌 한정 메뉴나 소비자 반응을 반영한 실험적인 시도가 없었다.

‘전통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메뉴 구성은 고정화되었고 이는 소비자에게 반복 경험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다. 전통은 유지하되, 구성은 유연하게 조정되어야 하는데, 반궁은 이 균형을 맞추지 못한 채 변화를 회피했다. 그 결과 “한 번쯤은 가볼 만하지만 두 번은 갈 이유가 없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또한 고급 식재료 사용, 넓은 홀, 저조한 회전율은 매장당 고정비 부담을 증가시켰고, 이는 수익률 악화로 연결되었다. 1시간 이상 체류하며 식사하는 고객 구조에서 높은 매출을 내려면 평균 객단가가 높아야 하는데, 브랜드는 가격을 더 올리기엔 대중성과의 괴리가 컸고, 낮추자니 수익이 나지 않는 이중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운영상의 압박은 가맹점주 이탈로 이어졌고, 신규 가맹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브랜드 확장은 사실상 멈추게 된다.

 

반궁이 남긴 교훈 – 프리미엄도 결국 고객의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

반궁은 고급 한정식이라는 프랜차이즈의 희소한 포지셔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브랜드였다. 그러나 외식 브랜드는 콘셉트보다 소비자와의 접점, 반복 가능한 경험 설계, 수익성 구조가 먼저다. 고급스러움만 강조한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감성적 공감이나 실용적 만족을 주지 못하면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

특히 전통을 고집하면서도 유연함을 잃지 않아야 하는 한식 브랜드는, 시대의 언어로 전통을 재해석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반궁은 이러한 감각적 리브랜딩, 콘텐츠 마케팅, 고객 중심 메뉴 설계 없이 ‘정적인 전통’에 머물렀고, 결국 소비자에게서 멀어지고 말았다.

현재 반궁은 대부분의 가맹점이 문을 닫았고, 브랜드 자체의 활동도 멈춘 상태다. 이 사례는 프리미엄 외식 브랜드를 기획하려는 창업자와 운영자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고급 한정식이라는 카테고리도, 결국 ‘고객의 일상’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브랜드로 살아남기 어렵다.